2025/05/29 2

새의 이름 / 박소란

새의 이름 -박소란 머리맡에 한 점 빛이 걸려 있다자다 깬 자리에벽을 곧추세우는 맑은 얼룩 어디서 나타난 빛인가새인가날다 날다 문득 여기까지 왔구나 낡은 스탠드처럼 척추가 굽은 새그 새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의 새, 라고 해도 될지 배운 적 없는 이름을 기억해 내려 오늘은 조금 걸어야겠다마트에 가서 과일을 고르고 저녁에는 새 밥을 지어야겠다쌀을 씻을 때 흐르는 보얀 물을 손으로 가뜩이 떠서 마셔도 보고 나아야겠다 한 마리 새를 얻어 벽에 걸어 두었으니날개를 보기 좋게 손질해 못을 박아 두었으니 이슥한 밤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새야, 새야, 부르면비명처럼 찬란한 피를 쏟고 으스러진 날갯죽지를 푸드덕거리고 벽 가득 번져 흐르는 글씨유심히 들여다보면아직 남은 약간의 아침, 부신 눈을 비비다 보면 창, 하고 ..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 / 김소연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 -김소연 입술을 조금만 쓰면서내 이름을 부르고 나니오른손 바닥이 심장에 얹히고나는 조용해진다 좁은 목구멍을 통과하려는물줄기의 광폭함에 가슴이 뻐근할 뿐이다 슬프거나 노여울 때에눈물로 나를 세례(洗禮)하곤 했다자동우산을 펼쳐든 의연한 사내 하나가내 처마 밑에 서 있곤 했다 이제는이유가 없을 때에야 눈물이 흐른다 설거지통 앞하얀 타일 위에다밥그릇에 고인 물을 찍어시 한 줄을 적어본다네모진 타일 속에는그 어떤 암초에도 닿지 않고 먼 길을 항해 하다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방주가 있다 눈물로 바다를 이루어누군가의 방주를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자에게는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평생토록 새겨왔던 비문(碑文)에습한 심장을 대고 가만히 탁본을 뜨는자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