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솟구쳐 오르기 / 김승희

주선화 2008. 4. 15. 11:26

솟구쳐 오르기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의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1995년>

 

 

*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는 매일매일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튕겨오르는 힘, 솟구쳐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륵 솟구쳐 오름" (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

 

이 시에도 상처에 내제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봅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 파란 싹, 파아란 보리, 개구리, 빨간 넝쿨장미, 민들레, 나뭇가지의 새 눈,

의 몸을 빌려 솟아 오른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운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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