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낙화 / 조지훈

주선화 2008. 4. 17. 11:50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커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1946년>

 

 

*

천지에 꽃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얼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 어진 이는 만월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의 모순)

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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