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리에서 / 박라연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밭이 보이면
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거린다
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
라고 믿고 싶지만
두 눈으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흔적인 옥수수의 흔들림 감자꽃 향기는
왕산(王山)이 본 것 중 가장 귀한 것이다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차 파는 오두막집이 보인다
그 주인은 이미 산의 일부이면서
바람의 일부일 것이다
적막 속 어딘가에 집 한 채만 보여도
왕산(王山)은 그 기(氣)를 바꾼다
수십만 평의 산을 거뜬히 먹여 살리는 것은
한 됫박쯤 될까 말까 한
몇 사람의 숨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