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2011 신춘 한국일보 당선작

주선화 2011. 3. 1. 11:57

사과의 길 / 김철순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나는 얼른 그 길로 들어가요

동그란 동그란 길을 가다보니

연분홍 사과꽃이 피었어요

아주 예쁜 꽃이에요

조금 더 길을 가다보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어요

아주 작은 아기 사과에요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가는 비는 살금살금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주었어요

그런데 큰일났어요

조금 더 가다보니

큰바람이 마구마구 사과를 흔들어요

아기 사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어요

아기 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조금 더 동그란 길을 다가보니

큰바람도 지나고 아기 사과도 많이 자랐어요

이제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엄마가 깎아 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냄비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

 

 

 

플라타너스 잎

 

 

숙제 못해서

학교 가기 싫은 마음

자꾸만자꾸만

학교 가기 싫은 마음

샘처럼 송송송

솟아나는 걸,

솟아난 마음

시냇물처럼

졸졸졸 흐르는 걸,

점점점 물이 불어나는 걸,

이제는 그 마음 건너지 못해

정말,

학교에 못 갈 것 같은 내 마음

플라타너스 나무는

어떻게 알았을까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한 잎,

두 잎,

잎 떨구어

징검돌 놓아 준다

 

 

 

 

* 당선작(사과의 길)은 다른 응모작들보다 보기 힘든 긴 호흡으로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환상적인

서사를 빗어내고 있다 엄마가 사과를 깎는 동안 아이는 사과껍질이 내는 (사과의 길)로 들어서고, ......

심사: 김용택,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