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로즈밸리 / 이서화

주선화 2019. 12. 28. 21:58
로즈  밸리*
             이서화


일몰에 꽃을 피우는 곳
장미는 없고 장미빛만 일제히 피어나는
이곳은 오월의 어느 담장인가
일몰의 일가를 이루기 위해
협곡 아래로 늘어선 선홍빛 절벽
날 선 바위들
침식과 바람을 불러
저녁의 한때 꽃피고 있는가

한 가지 꽃으로도,
그 꽃의 빛으로도 뒤늦은 정원을 설계한
사람 이전의 시간
고작 사람의 기후에 시달린 사람들
한 무리 풍화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거친 기후와 바람은 반길 일이 아니겠지만
풍화가 이토록 아름답다면
묵묵히 받아낼 협곡 하나 갖고 싶다

풍화에 맞서는 것은
모래 덩어리나 식물이나 같다
하루에 한 번씩 피고 지는
저 오후의 정원
꽃 없이 빛으로만 꽃밭이다


* (크즐 추쿠르) 터키 카파도키아에 있는 환상적인 석양을 볼 수 있는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