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주름들 / 문정영

주선화 2020. 11. 21. 08:58

주름들

ㅡ 문정영

 

 

그 안에서 안녕한지, 주름을 통과하지 않은 달콤함은 없네

 

물음은 물음답게 여름의 그늘에서 암전할 것, 얌전할 것

 

지렁이가 지렁이의 몸짓을 익히는 것은 천년이 아니라 하루

 

세속에 물들지 않은 나이는 없네

 

나를 부르는 소리가 천 마리의 깃털로 날아가는 오후

 

네 몸속 수많은 주름을 통과하고 싶어

 

속죄하는 양이 천 마리 만 마리, 나는 내 죄를 사하는데

 

잠들 수 없어, 그때마다 너의 몸에서 만개한 주름들

 

이럴 때 하필 사랑이 유리창 같다는 생각이 들지

 

너를 통과하면 내가 먼저 깨어지고

 

더듬거리며 켰던 램프의 불빛은 그 순간이 절정이야

 

꽃은 허공의 주름을 거두어야 한 겹 피어나고

 

나는 너의 꽃에서 만 개의 몽상으로 피어나지

 

너는 하드커버의 글씨가 두꺼운 책, 새벽마다 펼치고 싶은

 

겹겹의 꿈틀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