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들
ㅡ 문정영
그 안에서 안녕한지, 주름을 통과하지 않은 달콤함은 없네
물음은 물음답게 여름의 그늘에서 암전할 것, 얌전할 것
지렁이가 지렁이의 몸짓을 익히는 것은 천년이 아니라 하루
세속에 물들지 않은 나이는 없네
나를 부르는 소리가 천 마리의 깃털로 날아가는 오후
네 몸속 수많은 주름을 통과하고 싶어
속죄하는 양이 천 마리 만 마리, 나는 내 죄를 사하는데
잠들 수 없어, 그때마다 너의 몸에서 만개한 주름들
이럴 때 하필 사랑이 유리창 같다는 생각이 들지
너를 통과하면 내가 먼저 깨어지고
더듬거리며 켰던 램프의 불빛은 그 순간이 절정이야
꽃은 허공의 주름을 거두어야 한 겹 피어나고
나는 너의 꽃에서 만 개의 몽상으로 피어나지
너는 하드커버의 글씨가 두꺼운 책, 새벽마다 펼치고 싶은
겹겹의 꿈틀거림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 이서린 (0) | 2020.12.09 |
---|---|
흐리고 흰 빛 아래 우리는 잠시 / 황인찬 (0) | 2020.12.03 |
눈물만큼의 이별 / 한현수 (0) | 2020.11.17 |
하얀 새 / 배우식 (0) | 2020.11.16 |
밤 11시 / 신달자 (0) | 2020.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