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의 유서
-김종식
수리산 벤치에 앉은 눈사람, 봄날을 스며들며 명상에 들어 있다 한 번에
쏟을 수 없는 눈물 같은 할 말을 가득 담고 수만 리 물길을 따라 돌고 돌다
가, 구름으로 흐르다가, 조심조심 낙하하던 여정을 녹이고 있다
어깨를 다독이자 변신할 때마다 밀어내던 체온으로 쓰던 유서가 촉촉이
손바닥으로 옮겨 붙는다 솜털 같은 몸 안에 아직도 헤어질 인연이 남아
있다니
눈, 코, 귀를 떼어 조금 전까지 어깨동무하던 나를 지워버린다 아무 데
도 가지 못할 부동을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정동이 생길 때까지,
햇빛은 필사적으로 사라지는 전생을 땀 흘리며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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