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광장 오후 세 시
-전비담
햇빛을 켜고 있네 시계침이
파국의 축제를 켜는 첼로 활처럼
더디게 걷는 해가
예언의 하반구에 들어 부푸는 중
햇살에 들켜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건물 유리창들
붉은 눈 새의 심정과
시베리안 고양이의 발톱 감정이 된 기분
우리는 땅바닥에 붙은 발바닥을 어쩔 수 없어
교회의 첨탑까지 부탁의 긴 손을 거듭 뻗는 풍선인형들
더 잘 보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대신 풍선의 무덤을 불며
중단되지 못한 채 들어 올려지는
이천 년 후 사람의 아들들
지키지 않은 약속들을 지켜선 용역제복의 무표정들이
밀랍의 고양이 눈알 같아
죽은 자들을 묻어 만든 화단에
떨어진 꽃들의 고요가 너무 빽빽해
숨죽여 숨을 쉬는
숨구멍의 비밀이 있는 것 같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사안일의 굴욕에는
모가지를 꺾고 싶은 색깔의 비밀이 있지
뚝, 뚝, 뚝, 뚝, 광장의 시계침이
붉은 청보라색 묵시록을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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