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시청광장 오후 세 시 / 전비담

주선화 2023. 10. 28. 16:38

시청광장 오후 세 시

 

-전비담

 

 

햇빛을 켜고 있네 시계침이

파국의 축제를 켜는 첼로 활처럼

 

더디게 걷는 해가

예언의 하반구에 들어 부푸는 중

 

햇살에 들켜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건물 유리창들

붉은 눈 새의 심정과

시베리안 고양이의 발톱 감정이 된 기분

 

우리는 땅바닥에 붙은 발바닥을 어쩔 수 없어

교회의 첨탑까지 부탁의 긴 손을 거듭 뻗는 풍선인형들

더 잘 보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대신 풍선의 무덤을 불며

중단되지 못한 채 들어 올려지는

이천 년 후 사람의 아들들

 

지키지 않은 약속들을 지켜선 용역제복의 무표정들이

밀랍의 고양이 눈알 같아

 

죽은 자들을 묻어 만든 화단에

떨어진 꽃들의 고요가 너무 빽빽해

숨죽여 숨을 쉬는

숨구멍의 비밀이 있는 것 같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사안일의 굴욕에는

모가지를 꺾고 싶은 색깔의 비밀이 있지

 

뚝, 뚝, 뚝, 뚝, 광장의 시계침이 

붉은 청보라색 묵시록을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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