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통화는 (외 두편)
-길상호
거울을 보면 그 얼굴이 그대로 있어요, 할 수 없이 먹어 치
워요,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는데, 과식하면 안 되는데, 감염
된 심장으로 통화를 해요, 당신은 없는 사람이래요, 식은 밥
처럼 조용히 살고 있어요, 입에서 김이 날 일도 없고 발버둥
도 사그라졌죠, 구름이 천장을 뛰어가네요, 까만 눈을 갖고
있겠죠? 달이 헉헉 숨차고, 마우스는 바퀴를 굴리고, 컴퓨
터가 한 장 한 장 백지를 넘기는 밤이에요, 당신 이름과 전
화번호를 적어 뒀어요, 삭은 밤이 고무줄처럼 끊어지기도
해요, 술은 아직 마시고 있지 않아요, 미안해요, 어두운 이
야기만 해서
노래는 저 혼자 두고
툭툭, 어깨를 쳐도 돌아보지 않았더니 삐친 노래가 혼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쉰 목소리로 불러도 알은체를 하지 않
았더니 슬며시 창을 열었다, 별 많은 겨울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래를 끊었다
재개발
당신과는 맞지 않아
이야기가 기울어졌다
흑에 대해 질문을 하면
백에 대해 대답하는데
우리는 나팔꽃 때문에 겨우 마주 서 있다
사랑은 낡았고
꽃도 낡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 녹슨 것뿐인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이별을 했다
바늘과 실은 작별을 했다
액자를 버리고
그림이 너덜해졌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관계가 필요했다
새가 날아가다
날개를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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