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외 1편)
- 성선경
그 모든 시샘 중에서
가장 고약한 건 꽃샘
이제 막 눈 뜬 꽃망울 다 안다
푸릇푸릇 보리밭도 서릿발
중늙은이도 얼어 죽는데
하마 저 어린 것들이야
나를 잡자고 날을 잡았나?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걸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저 매화도 어딘지 언 볼이 심상찮은데
갓 핀 봄날이야 물어 무슨 답 있으랴
수풀 속 복수초는 복수초대로
울 밑의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큰 추위는 이제 다 갔다 그랬는데
한 줌 햇살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 지경
그 모든 시샘 중에서
가장 고약한 건 꽃샘
한 뼘 햇살에 목을 내밀었다 이 지경
나를 잡자고 날을 잡았나?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걸.
풀등
잊었다 말한다고 다 잊힌게 아니라고
어느 날 불쑥 떠오르는 그녀의
훌쩍이며 돌아서던 뒷등 같은 것
여기 있다
비 온 뒤 맑은 바람이 불 둣
가슴을 적시는 기억의 서늘함이여
바다 속 고래가 잠시 물 밖으로
호흡을 위해 등을 보이 듯
뿜어 올리는 저 빗살
잊힌다고 다 잊힌 게 아니라고
문득 문득 돌아서서
아직도 훌쩍이는 그녀의 울음소리
나직이 귓전을 때릴 때
오직 내게만 보이는 네 등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등
자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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