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희끗, / 김근

주선화 2025. 4. 15. 15:14

희끗,

 

-김근

 

 

1

  희끗, 당신이 사라진다 길 저편으로 희끗희끗이 희끗 하나만 남

기고 희끗 하나만 가지고 남겨진 보이는 희끗에 나는 희끗, 집착하

고 당신은 그만 안 보이고 나는 보이기만 희끗, 희끗, 보이다 말다

하던 나는 말다는 아주 버려버리고 보이다만으로 내내 보이기만

희끗,

 

2

  희끗, 걸어서 올라갔지 그 비탈길 희끗, 희끗, 희끗, 모퉁이진 그

비탈길 달빛 무성하고 길섶 너머 숲속 무성하고 깜깜하고 무성하고

희끗, 깨지는 듯 물소리 희끗, 희끗, 끗, 끗, 또렷한데 어둠 저쪽에서

부터 희끗, 팔랑거리는 나비인지 희끗, 희끗, 뒤집혀 희번덕거리는

눈빛인지 희끗, 희끗, 희끗, 지금은 안 보이는 당신의 옷자락인지가,

 

  희끗, 희, 희끗, 희끗, 오는데, 희끗, 걸어서, 희끗, 올라갔다는, 희

끗, 말은, 생, 희끗, 거짓, 희끗, 말이지, 희끗, 내처 내달음질쳐, 희

끗, 올라 올라, 희끗, 갔지, 희끗, 지금은 없는 그 비탈길, 희끗, 희

끗, 희끗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희끗, 희끗으로 그만 사라지지 않

으려고, 희, 끗, 발버둥을 버둥을 치며, 버둥버둥버둥, 희희희희, 끗,

 

3

  희끗 하나가 희끗 하나를 낳아놓는다 그 희끗 하나가 또 희끗 하

나를 낳아놓는다 희끗이 희끗을 낳고 희끗은 희끗을 낳고, 낳고 낳

고 낳고, 희끗끼리 교접하고 희끗끼리 새끼 치고 희끗, 멈출 줄을 모

르고 끝없이 생겨나는 희끗의 돌연변이들 보이다 말다 하던 희끗희

끗은 이제 없고 당신이 남기고 간 희끗이 어느 희끗인지 이제 알 수

없는데 당신이 가지고 간 희끗도 희끗도 희끗끗희끗끗 그러한지 보

이다도 말다도 아니게 아니게만 희끗희끗희 그러한지

 

4

  나는 희끗거려진다 희끗희끗은 아니고 오직 희끗만 거려지고 사

라진 쪽이 당신인지 나인지 희끗, 확신할 수 없고, 희끗, 그저 희끗,

희끗거리기만, 희끗,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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