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꽃의 속도 / 성영희

주선화 2025. 5. 21. 08:01

꽃의 속도

 

-성영희

 

 

불의 속도가 빠르다

모닥불에서 옮겨간 검은 발화를 본다

한 번 터지면 세상모르고 부푸는 꽃

그보다 빠르고 붉은 꽃은 없어서 사람들은 가끔 

놀이의 불꽃들을 쏘아 올리기도 한다

허공에서 발화하는 불꽃은 허공에서 사라지지만

땅에서 옮겨간 불씨는 걷잡을 수 없는 땅의 화염이 된다

첩첩산중도 빌딩 숲도

거대한 잿더미로 만들고 마는 엄청난 식욕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찮은 방심이 있을 뿐이다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번지는 불길에는

파멸의 소리음이 외마디로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리거나

잘 마른 장작처럼 토막 난 것도 아닌데

그 어떤 걸음보다 빠르게 번지는 방심

활활 타오르는 저것은 놓쳐버린 순간이다

보이지 않는 검은 속내에는

번지는 앞을 맹렬하게 쫓아가는 뒤가 있다

반드시 앞을 막아서지 않으면 막을 수 없는 불꽃의 계절

 

한 줌 검불을 먹어치우던 화마는

마을과 산들을 모두 먹어치우고야 혀를 거둔다

배를 가르면 검은 재와 흰 연기만 가득하다

 

봄이 되면 입맛을 다시는 붉은 꽃

방심은 저 엄청난 입이 노리는

순간의 먹잇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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