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고 말하기 전에 ㅡ 전형철 세상의 모든 종말은 내 처음의 것. 말이 늦다. 유음을 배워 두고 받침을 잃어버린다. 문자의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고 심장 아래 잘 끼워진다. 아직이거나 이미였던 것들에 달린 열성의 꼬리표. 날이 차면 산이 밝아진다. 코끼리 뼈를 상처없이 도려내고 한 줌 모래알을 쥐고 단풍잎에 한 손을 올린다. 배경이 사라지고 창살만 남는다. 손가락을 벌린다. 느리게 감옥은 커진다. 칸막이 하나다. 밤이 무덤을 열어 문에 들어 앉는다. 지키지 못할 임종을 옷걸이에 걸어 두고 턱을 성호의 방향대로 긋는다. 신음은 낮고 치명적으로. 둥지에서 죽지 못한 아기 새에게. 부디. 산 자의 놀음. 죽은 자의 기도. 뒤로 돌아 걸으며. 세상의 모든 탄생은 나 다음의 일. 거기서 나는 그림자를 떠메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