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수면/권혁웅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심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 짧은 시 2009.01.06
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안도현 젖은 길과 마른 지붕, 우는 말과 울지 않는 바퀴, 쓰러지는 나무와 일어서는 눈보라, 취하는 술과 취하지 않는 비탈, 납작한 빵과 두꺼운 가난, 아픈 동생과 아프지 않은 약, 가까운 하느님과 먼 총소리, 있는 군인과 없는 국경, 없는 아버지 산 너머 아버지를 넘어, 가.. 짧은 시 2008.12.30
봄 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봄 밤/서영처 수상쩍은 기미가 몰려온다 최루가스처럼 묻어온 꽃가루들이 다투어 내 몸을 빌리려는 것 폭도처럼 산을 내려와 밤에 더 기승을 부리는 가려움 붉은 삐라를 살포하고 봄은 나를 짓밟고 간다 꽃 진 자리 오래도록 얼룩얼룩하다 짧은 시 2008.10.14
맛있는 밥 맛있는 밥/박성우 밥벌이 한답시고 달포 넘게 비운 집에 든다 아내는 딴소리 없이 아가한테 젖을 물린다 허기진 나는 양푼 가득 밥을 비벼 곱절의 밥을 비운다 젖을 다 먹인 아내가 아이를 안고 몸져눕듯 웃는다 우리 아가 똥기저귀통에 비벼먹으니깐 더 맛있지? 아가도 소갈머리 없는 나도 잘먹었다.. 짧은 시 2008.10.08
저자의 말 내 시(詩)의 뼈와 살들은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니다. 눈만 뜨면 내 귀에 딱지가 앉고 내 눈에 화살로 와 박히던 저 슬픈 말씀의 못자국들 저 못자국들이 내 몸을 이룬 것이다. - 성선경 짧은 시 2008.09.30
가을 날 가을 날 /정희성 길가의 코스모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다 선득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림자가 한층 길어졌다 짧은 시 2008.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