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이우걸 비 이우걸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깊숙이 닿는 여운을 마침표로 지워버리며. 새는 날아서 하늘에 닿을 수 있고 무성한 별들은 어둠 속에 빛날 테지만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짧은 시 2010.04.02
고등어 한 손 / 최창균 고등어 한 손 / 최창균 바다 벗고 소금 꽃 피웠다 고등어가 간 고등어로 헤엄치는 시간 동안 바다 눈 뜨고 있는 저 물 좋은, 고등어 한 손 주세요? 철썩, 들었다 얼른 고등어 들쳐 업었다 바닷물이 간간하게 빠져나간 고등어 한 손 짧은 시 2010.03.27
춤 / 전봉건 춤 / 전봉건 봄에 만났습니다 당신을 손길 고운 아지랑이더군요 여름에 만났습니다 당신은 다리 고운 여울이더군요 가을에 만났습니다 당신은 허리 고운 바람이더군요 겨울에 만났습니다 당신은 등어리 고운 눈발이더군요 짧은 시 2010.02.08
몸 5 몸 5 - 손영희 고요로 항변하는 잡목 숲에 불을 당기면 우르르 난데없는 수맥이 깊은 동굴 구멍 숭숭 뚫린 난간 밑으로 흐르고 나는 발이 빠져 수수천년 무릉도원 도화녀 꽃 속의 나비 어르는 순진무구 의 거침없는 여자가 되어 달디단 모반의 사랑아 꿈속에서 평생이 간다. - <오늘의 시조> 제3호에.. 짧은 시 2009.04.20
비누 비누 / 이우걸 이 비누를 마지막 쓰고 김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 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 짧은 시 2009.04.19
공손한 손 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짧은 시 2009.03.13
사랑 사랑/김근 그러나 돌의 피를 받아 마시는 것은 언제나 푸른 이끼들뿐이다 그 단단한 피로 인해 그것들은 결국 돌빛으로 말라죽는다 비로소 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짧은 시 2009.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