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가는 나무 / 안현미 수학여행 가는 나무 / 안현미 나무는 쓴다 우리 모두가 연류되어 있다고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 에도 가을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떠나지 못할 거라 고 쓴다 결국 떠날 수 없는 건 없다고 쓴다 다만 울음이 바닥 났을 뿐 이라고 쓴다 나무는 운다 굴뚝 위에 독재 위에 철탑 .. 흥미 있는 시 2015.06.22
찾습니다 / 이영혜 찾습니다 / 이영혜 부풀린 어깨에 가끔씩 포효 소리 제법 크지만, 낮잠과 하품으로 하루를 때우는, 허세의 갈기 무성한 수사자 말고 해만 넘어가면 약한 먹잇감 찾아 눈에 쌍심지 돋우는, 뱃속까지 시커면, 욕망의 윤기 잘잘 흐르는 음흉한 늑대 말고 훔친 것도 좋아, 높은 놈 먹다 버린 것.. 흥미 있는 시 2014.12.15
작은 꽃들아, 이상한 꽃들아 / 이성복 작은 꽃들아, 이상한 꽃들아 / 이성복 작은 꽃들아 얼굴을 돌리지 마라 나는 사람을 죽였다 죽은 꽃들아, 아무에게도 이 말을 전하지 마라 나는 너희처럼 땅에 붙어 살 자리가 없어 그 자리, 내 스스로 빼앗은 자리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작은 꽃들아, 푸른 구멍으로 솟아난 이상한 빛.. 흥미 있는 시 2014.07.11
책 / 김재혁 책 / 김재혁 구름보다 더 늙은 책이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 얼굴을 들이마시고 어루만진다, 내 마음을 제본하여 읽어 보라고 내민다. 책의 손가락이 내 속을 더듬으며 뒤틀린 내 영혼의 손목에 봉침을 놓으며 웃는다. 병원 복도에서 소리 지르는 반 귀머거리 노파, 귀먹은 책이 나를 향해 .. 흥미 있는 시 2013.08.17
반 고희의 귀 / 이경임 반 고흐의 귀 / 이경임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나무는 장신구를 떼어버리듯 사소한 귀들을 떨어뜨렸다 모호한 악기들처럼 나무를 흔들던 잎사귀들이 사라졌다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나무는 늘 귀가 아팠다 허공이 흔들리는 잎사귀들로 꽉 채워져서 나무는 아무런 소리도 .. 흥미 있는 시 2013.08.13
봄, 잔혹동화 / 김도언 봄, 잔혹동화 / 김도언 해 기운 저녁 혼자서 깊은 산길을 걷다가 길을 잃었는데요, 다행히 어떤 할머니를 만났어요.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손에는 어여쁜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어요. 할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성급하게 길을 묻는 내 눈을 피하더군요. 할머니의 아름다운 잿빛 머리칼이 .. 흥미 있는 시 2013.04.08
거미의 힘 / 박규리 거미의 힘 / 박규리 오랜만에 창을 여니 거미줄이 나의 방을 눈부신 빗장으로 채워놓았다 눈물보다 강한 제 몸의 뿌리를 하늘 향해 거침없이 뻗어올렸다 믿을 수 없다 거미가 이 넓은 세상을 온몸으로 거머쥐는 법 오직 단 한 줄로 엮은 이 슬픈 족쇄의 시작은 어디이고, 그 끝은 .. 흥미 있는 시 2012.02.18
방언 / 고영민 방언 / 고영민 새는 나무 속에 있지요 꽃은 돌 속에 있구요 물 한 모금 먹고 와 울지요 물 한 모금 먹고 와 피지요 낮은 소리로 울지요 낮은 소리로 피지요 아이는 돌 속에 앉아 나무 위에 앉아 새를 그려 달라, 꽃을 꺾어 달라 보채고 새야, 꽃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걷잡을 .. 흥미 있는 시 2012.01.20
팔월 즈음 / 최영철 팔월 즈음 / 최영철 여자를 겁탈하려다 여의치 않아 우물에 집어던져버렸다고 했다 글쎄 그 놈의 아이가 징징 울면서 우물 몇 바퀴를 돌더라고 했다 의자 하나를 들 고 나와 우물 앞에 턱 갖다놓더라고 했다 말릴 겨를도 없이 엄마, 하고 외 치며 엄마 품속으로 풍덩 뛰어 들더라고.. 흥미 있는 시 2011.12.09
목젖 / 박성우 목젖 / 박성우 평소엔 그냥 목젖이었다가 내가 목 놓아 울 때 나에게 젖을 물려주는 젖 젖도 안 나오는 젖 같은 젖, 허나 쪽쪽 빨다보면 울음이 죄 삼켜지는 젖 무에 그리 슬프더냐, 나중에 나중에 내가 가장 깊고 긴 잠에 들어야 할 때 꼬옥 물고 자장자장 잠들라고 엄마가 진즉에 물려준 젖 흥미 있는 시 201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