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만삭/고영민 새벽녘 만삭의 아내가 잠꼬대를 하면서 운다. 흔들어 깨워보니 있지도 않은 내 작은마누라와 꿈속에서 한바탕 싸움질을 했다. 어깨숨을 쉬면서 울멍울멍 이야기하다 자신도 우스운 듯 삐죽 웃음을 문다. 새벽 댓바람부터 나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본다. 작은마누라가 예쁘더냐, 조심스레 물.. 흥미 있는 시 2009.03.23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 흥미 있는 시 2009.03.14
말 달리자, 예수 말 달리자, 예수 / 하린 씨팔, 나 더 이상 안해 예수가 멀미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온다 못은 이미 녹슬었고 피는 응고 되어 화석처럼 딱딱해진 지 오래다 이천년 동안 발가락만 보고 있자니 너무나 지루했다 제일 먼저 기쁨 미용실에 들러 가시 면류관을 벗고 락가수처럼 머리 모양을 바꾼다 찬양백화점.. 흥미 있는 시 2009.02.03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박성우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흥미 있는 시 2009.01.30
안도현시인 블로거에서.... 제 1부 사랑말고는 다 고백했으니 백년 정거장 - 유홍준 - 백년 정거장에 앉아 기다린다 왜 기다리는지 모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렸으면서 기다린다 내가 일어나면 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이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정거장이 사라질까봐 - 내가 일어서면 사라질까봐 그 자리를 떠나지 못.. 흥미 있는 시 2008.12.28
시야, 놀자 ! (11회 문인수) 문인수 시편 파냄새 노점 아주머니가 지금 부지런히 대파를 다듬고 있다. 아주머니한테 아직 묻어있는 色이 잠시 입을 가리며 킬킬킬 웃으며 오늘도 펑퍼짐한 몸 한 무더기를 털썩 낳아 놓았다. 어둑살 아래, 좌판 위에 쑥 쑥 뽑아놓는 대파, 파는 벗겨져 하얗게 가지런히 깔리고 건반 같다. 그 옛날 어.. 흥미 있는 시 2008.12.14
시야, 놀자 ! 11회 성선경 성선경 시 소 어머니 나는 죽어서 소가 되고 싶습니다 푸우푸우 거친 숨을 내뿜으며 이 나라의 크나큰 어머니의 들녘을 젖가슴같이 부드럽게 갈아 일구어 푸르디푸른 보리밭을 가꾸는 튼튼한 농우소가 되고 싶습니다 은혜로운 이 땅의 일꾼이 되어서 푸른 싹을 위하여 쟁기날을 끌다가 저 한 몸으로 .. 흥미 있는 시 2008.12.14
김달진 생가 김달진 생가 강희근 마삭줄이 앞담장을 덮어내리고 있다 선생의 눈썹 같다 비파나무는 비파나무대로 선생의 유년이 읽던 경문 한 절이거나 태산목은 태산목대로 선생의 시 한 연이거나 그 다음 연으로 가는 상상의 말마디, 잎 한 바닥씩 풀어놓고 있다 대밭은 대밭대로 우수수 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 흥미 있는 시 2008.12.03
대추, 혀가 풀리다 대추, 혀가 풀리다 / 마경덕 제 몸에 불을 지른 대추. 쪼글쪼글 사지가 졸아든다 벼랑 끝에 가부좌 틀고 한 계절 묵언에 든 수행자(修行者). 화두를 쥔 단단한 사리 한 알 중심에 박혀 있다. 바람과 천둥이 비껴간 천신만고 나뭇가지, 뜨거운 침묵에 나무가 휜다. 설설 끓는 대추. 더듬더듬 말문이 트이고.. 흥미 있는 시 2008.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