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숲
나무 하나가 흔들리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리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리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네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네
이렇게 이렇게
함께
시, ‘숲’에 대해서
그때 나는 6층짜리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무렵이어서 외출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아이가 한창 유모차를 탈 무렵이기도 해서 나는 매일 옥상에서 유모차를 밀며 살았다. 아파트 옥상 밑은 숲이었다. 어느 대학교의 뒷숲이라고 했다. 나는 매일 그 숲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햇살이 거기 나무들로부터 와서 나의 살을 뚫고 옥상의 맞은 편 벽을 지나 도시로 내려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잎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러고 조금 있으면 다음의 나무, 잎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그리고도 조금 더 참고 바라보면 그 뒤의 나무, 잎이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점점 높아지는 바람 소리에 따라 숲의 온 나무, 잎들이 흔들리는 걸 전신의 힘을 다하여, 나의 시력 속에 가두곤 하였다.
숲의 흔들림이 내 안의 그 무엇인가를 건들이며 한 일주일 쯤 지났을 때, 그러니까 그 숲의 어떤 모습이 나의 시력 안에 「정지」되어 축적되었을 때,____그것을 나는 잠복기라고 말한다. --_____그 「잠복기」가 일주일 쯤 지났을 때, 그 숲은 내가 옥상에서 내려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에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들이 고개를 저으며 꿈꾸는 이미지 앞에서 나의 「잠복기」가 끝났음을 살며시 알아챘다. 나는 숲의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리듬을 「복구」시키면서.
이렇게 80년대에 나는 「숲」이라는 시를 썼다. 그것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숲이 말한 것이었지 나의 말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시는 사시私詩의 범주를 벗어날 때만이 동시대에 사는 타인의 정서의 줄을 건들일 수가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 타인에게 나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정서의 극선極線을 슬쩍 갖다대야 한다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나의 정서가 타인의 정서를 강요하지 않고 타인의 정서 속에서 주관화되는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결국 동시대적 정서의 교환은 가능하게 될 것이며 연결은 우리의 가장 밑부분__근원에서 일어나게 되리라.
② 섬의 끝
섬의 끝에서
동쪽과 서쪽이 만났습니다.
동쪽이 서쪽의 어깨를 만지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해를 뜨게 한다고.
서쪽이 동쪽의 어깨를 만지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해를 지게 한다고.
북쪽이 끼어들었습니다.
나는 늘 지구를 얼어 있게 한다고.
동쪽과 서쪽이, 남쪽과 북쪽이
눈을 흘겼습니다.
서쪽과 동쪽이, 북쪽과 남쪽이
눈을 흘기며 어깨들을 심하게 부딪쳤습니다.
지구가 출렁
흔들렸습니다.
그 바람에 주홍 산나리 셋이
바위틈에 몸을 풀었습니다.
꽃잎으로 뿌리를 가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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