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교를 건너며 / 김진수 (현대시학신인작품당선작)
너를 버려 나를 얻는, 기막힌 적막감이
때로는 화두처럼 어둠을 몰고 온다
그 오랜 경계를 풀고 바람이 와 눕듯이
수평으로 어우러진 저 여린 어깻죽지
농게들 귀가하는 갈대숲이 젖어들 때
저 멀리 누가 부르나 등 밝히는 먼 마을
내 안의 전라선
낯설고 빛이 바랜 한때의 선로 위로
녹슨 기차 바퀴가 숨가쁘게 달려온다
깊어진 어둠만큼씩 버려야 저무는 길
길 위에 혹 길 밖에도 막다른 길은 있지
열망에 들뜨던 것 사뭇, 갇힌대도
떠난다, 나를 찾아서 다시 못 올 날들 위해
여울
사는 일이 느슨해져 어깨에 힘 빠질 때
큰소리를 내지르며 강가를 달려본다
팽팽히, 용솟음치며 내달리는 너를 좇아
세상 좁은 틈바구니 헤쳐 나와 여기까지
부딪쳐 몇 차례쯤 깨졌던 아픔이야
까짓 거, 소용돌이로 감아두면 그만이지
벼랑 아래 맴돌다가 이렇게 만난 우리
깨꽃 같은 저 물보라 물수제비 웃음으로
이쯤서, 맺힌 거 풀고 물살처럼 뒤채보자
옹기지붕
저수지가 건너 뵈는 가을 국도 건너편
수백 개 항아리가 엎드려 참선 중이다
바람도 그 곁에 누워 기도하는 시늉이고
새털구름 깔아주는 하늘 뜻은 다 몰라도
조붓하게 밀려드는 가슴을 열어보면
그곳에 꽃 이름 같은 동무들이 살고 있다
장독대 뒤에 피던 봉숭아 닮은 얼굴
눈 감아도 암암하다 총천연색 필름이다
살갑게 닿았던 자리 설핏하게 가렵다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가기까지
물과 불을 내달려 온 발자국 시린 길을
서로가 쓰다듬느라 불콰해진 저 놀빛
허수아비
묵정밭 망초대는 계절따라 넌출대고
마음에 뜬 별을 보고 새도 날아드는데
누더기 물 보리밭에 홀로 산들 어떠랴
험한 세상 건너느라 우리 살림 막막해도
딸라 돈 이자처럼 불어나는 돼지 풀아
저만치 물러서거라, 하늘 낯 좀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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