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차 위에 차가 와서 멈춘다.
길을 기억하는 몸으로 산이 되고 있다
무수한 부품들이 녹슬어 다시 흙이 되고 있다
평생 단 한 번도 차를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가
평생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걸어가 보지 못한 아버지가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떠났다
아버지의 걸음과 세상의 속력은
늘 반발씩 어긋나 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발뒤꿈치에는 결코 떼버릴 수 없는
세상 가장 무거운 내가 붙잡고 있어
아버지는 아버지의 속력을 잊어버렸다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속도로
나는 세상 모든 길을 달려왔다
모든 속력을 버린 차들이
가만히 편안하다
* 경남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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