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들이다
맨몸으로 비를 맞는다
비는 불어터져서 탱탱해지고
나무랄 데 없이 촉촉해진 나뭇가지 사이를
건너갔다 건너오는 하루
비는 요일을 결정하고
요일의 기분을 선택한다
흐렸다가 맑아지는 건 순전히
비의 마음,
고집스럽게 일직선 아니면 사선으로
나의 하루는
부딪히고 깨지고 얼얼해지다가
검고 푸른 물병자리를 빠져나온
그림자에 점점 잠긴다
이상하고 경이로운 감옥처럼
하늘이 있고 흰 양떼구름이 있고
검은 산이 있고 검은 나무가 있고 검은 이파리가 있고
꽃잎이 있다
나무에게로 손을 넣는
하늘과 구름, 나뭇잎이 사라지고 꽃잎만 남는
떠오르다 도망가는 그가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슬픔 가득한, 그가 있었다
잃어버린 이름이, 잊어버린 풍경을 오래 배신하면서
어쩌다가 도착한 목소리처럼
이상하고 경이로운 감옥처럼
* 마산 문학 43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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