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꽃 머슴살이
ㅡ홍준경
큰누이가 귀동냥해 준 참깨꽃 이야기야.
가진 논밭 한 뙈기 없고 뒷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 딸린 권속 많은 나이 어린
가장이었던가. 울며 겨자먹기로 바람처럼
머슴살이 떠날 수 밖에. 그런데 말이야, 참말이지
겨울나무 봄풀하기 보리타작 안 해 본 일이 없고,
무논심기 끝내고 조금은 한가한 계절이 오면
참깨꽃 속없이 흐드러진 게야. 이 무렵이면 머슴
밥상에 고봉밥을 줄이고 찬거리를 하나씩
뺀다는데 왜 그러겠어? 나갈 테면 나가라는 게지.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갑'의 착취, 지독한
자린고비 수전노였던 것 같아, 그 서러운
보릿고개에.....
절반의 새경 받고 얼마나 원망하겠어, 그 참깨꽃을.
바람이 그린 그림
ㅡ문수영
빗속에 바람 침 들어있는 줄 몰랐다
벚꽃 다섯 장 오롯이 모여 하나의 꽃잎 이루다가
보슬보슬 봄비에 눈송이처럼 낱낱이 흩날린다
바람이 입김 불어넣자 하르르 날아서 지상에 분홍
융단을 깐다 바람이 들창문 두두렸는데 몰랐다.....
지상에 융단으로 재생한 짧았던 행복
벗꽃 잎 푹신한 융단, 바람이 그린 그림
바람 하나쯤
ㅡ노영임
이 나이에 왠 사랑? 에그머니 남사스러워라
아냐! 아냐! 도리질 치다 내 나이가 뭐 어때서?
지금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잖아. 얼굴만
떠올려도 입꼬리 실쭉샐쭉, 별 뜻 없이 건네는
한마디에도 키득키득. 기척만 느껴져도 귓볼까지
발그레하니,
어머나! 짧은 감탄사 절로 터지지 않을까?
봄따라 마음따라 늙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통 분간 못하지만
턱없는 바람 하나쯤 가두고 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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