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건들거리네 / 조창환 (목월 문학상)

주선화 2023. 11. 24. 11:52

건들거리네

 

조창환

 

 

범생이가 건들거리며

땅끝마을 바닷가를 거닐고 있네

바람도 없는데

파도도 조용한데

아직 못 해 본 일 많은데

범생이는 건들거리네

벙거지 눌러쓰고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제멋대로 건들거려보네

막힌 데 앞에서 돌아갔고

허물지 못하고 비켜 갔던

범생이의 한 생은 후회가 많아

제 몸 하나 건들거려보는 일에도

흥이 솟네

평생 못 안아본 사람

안아보고 싶기도 하고

평생 못 만져본 고래

만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부질없고, 헛대고, 망령스러워

다 잊어버리기로 하네

잊어버리고

그냥 건들거리기만 하기로 하네

 

 

 

새의 춤

 

 

빨간 발끝으로

모래톱에 얉은 지문을 남기며

새는 작은 공처럼 튀어간다

 

비눗방울 같다

새가 추는 춤

 

꽃그늘 흩트리는 발레리라 같고

암각화에 찍혀진 고래 숨소리 같다

 

그렇지? 거기 환하게 철썩거리는

파도 있고, 모래 있고, 바람도 있지?

 

하늘에서 보리쌀만한 그늘들

후드득 쏟아질 때

 

그것이 춤인 줄도 모르는 채, 새는

천진하고 무심하게 통통통 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