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휠체어와 봄(외 1편) / 김정희

주선화 2025. 4. 19. 08:51

휠체어와 봄

 

-김정희

 

 

늙은 여자가 더 늙은 여자를 밀고 간다

더 늙을 일이 없는 여자와

늙을 일이 조금 남은 여자는 다정하다

늙도록 익숙한 길

더 늙은 여자의 어깨 위에

조금 늙은 여자가 손을 얹는다

 

수국은 별을 닮았구나

우주별이 내려온 줄 알았구나

 

보라에 희고 붉은 길의 끝으로

휠체어가 굴러간다

이 길을 돌면 다음 길이 있다는 걸

다 안다는 듯 오래전에 알았다는 듯

 

두 여자 다음 계절의 처음으로 걸어간다

거의 왔구나, 하면서

 

 

 

남지 오일장

 

 

노란 콩 두 되에

까다 만 가랑파

흙을 털지 않은 쑥에

물뿌리개를 흔들어대는 칠순의 할머니

맨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눈다

 

겹겹 속곳 아래

반쯤 까발린 우주

속곳 올린 자리에 피어오르는

천지의 흔적

국물에 말아 드신 부끄럼

 

남지 오일장이

환하다

 

 

*깁정희 시집 <다음 계절의 처음>

ㅡ 시인동네 시인선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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