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옷 소매 하얀 옷소매 / 신미나 한밤에 누가 내게 전하는 기별이길래 얼굴에 머리카락 한 올 내려앉는 기척으로 귀 울림이 왔다 가나 글 모르는 친척들의 뒤주 속 같은 먹눈과 첩의 몸으로만 떠도는 비천한 조상들이 문 밖에서 손이 곱아 이를 부딪고 서 있는데 엄지손가락에 첫 실을 감고 얼마나 오래 끝 모르..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9.01.05
안도현 블로거에서 아프리카 - 최영철 몸살로 여러 날 아프다 아프니까 내가 살아 있다 아프지 않을 땐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프지 않을 땐 내가 죽은 것이 다름없었다 맥박은 뛰는지 숨은 쉬는지 몰랐다 아프니까 할딱거리는 내가 들렸다 할딱거리는 내가 만져졌다 약을 타려고 줄선 구부정한 뒤통수가 보였다 살..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30
재테크 재테크 /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30
박쥐 똥을 쓸며 박쥐 똥을 쓸며 /안도현 누옥에 와서 맨 처음 하는 일은 마루 위의 박쥐 똥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일 이 똥들 중에는 오래 전에 박쥐의 똥구멍을 빠져나와 이미 단단하게 말라버린 놈도 있고 그제나 어제쯤 빠져나와 좀 말랑말랑한 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쥐가 제 눈알처럼 까만 것들을 찔끔찔..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30
저녁밥 저녁밥 / 안도현 어두워지자 저녁은 찬장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꺼내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귀뚜라미 소리는 고양이 눈알을 두 개씩 말갛게 닦아 마루 밑에 달아놓았다 고양이 눈알에서 펌프질한 차가운 눈물을 받아 쉰 보리밥을 두 그릇이나 말아먹었다 보리밥 냄새가 빠져나간 부엌 구석에서 찬장은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30
당신의 눈물 당신의 눈물 / 김혜순 당신이 나를 스쳐보던 그 시선 그 시선이 멈추었던 그 순간 거기 나 영원히 있고 싶어 물끄러미 물 꾸러미 당신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것인 물 한 꾸러미 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 잠들면 내 가슴을 헤적이던 물의 나라 그곳으로 잠겨서 가고 싶어 당신 시선의 줄에 매달..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15
바람의 육체 2008 4차분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바람의 육체/김륭 몸 안에서 죽은 시간이 머리카락으로 자라 들어 올린 머리, 팔베개 할 수 없는 달의 무덤가로 훌쩍 키만 자란 바람이 울어 자꾸 울어 손발만 그려주면 사람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당신 털썩, 주저앉아 바닥칠 수 없는 나무를 갈비뼈 삼아 육체..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2.04
어느 악사의 0번째 기타줄 어느 악사의 0번째 기타줄 / 함기석 흉부가 기타로 변한 여자가 어둠 속에서 늙은 몸을 조율하고 있다 심장을 지나는 여섯 개의 팽팽한 핏줄들 눈을 감고 첫 번째 줄을 끊는다 금세 깨질 것만 같은 울림통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핏물이 저음으로 흐른다 기억은 동맥으로 망각은 정맥을 타고 심장 아래..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1.25
멸치 멸치/허연 언젠가 하얀 눈보라처럼 바닷속을 휘저었을 멸치 떼가 말라 간다. 영혼은 빠져나갔는데 하나같이 눈을 뜨고 있 다. 죽기 싫었던 멸치가, 사랑의 정점에 있던 멸치가 눈도 못 감은 채 말라 간다. 말라서 누군가에게 국물이 되는 종말. 그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눈 뜬 놈들이 뒤엉켜 말..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1.24
같이 과자 먹었지 / 황병승 같이 과자 먹었지 엄마를 닮은 까마귀들...... 호박색 자동차와 달콤한 과자...... 무지개...... 밤거리...... 이것은 아름다움과 슬픔의 끝에서 만난 세계 우리는 모두 다섯이었고 까마귀가 되어서 행복한 까마귀들은 가끔씩 내게 말을 건넸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같이 과자 먹을래?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