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 유종인 국수 / 유종인 1 늙은 창녀와 먹어도 되고 노숙 노인과 먹어도 되네 도망 중인 조선족과 눈빛 깊은 네팔 人과 한 세월 젓가락질하며 울음 감춰 먹어도 되네 2 출출하신 어머니가 무덤 밖에 나셨을 때 무덤 문 닫히기 전에 아들과 서서 먹는 저승도 장수하시라 말아드린 잔치국수 시조 2012.10.03
에밀레, 탁본에 들다 / 서숙희 에밀레, 탁본에 들다 서숙희 푸른 소리의 집에 한지 한 장 올려놓고 말씀을 허락받듯 가만히 먹을 바치면 소리는 검은 박하향을 몸 가득히 머금어 스미듯 번지듯 길을 내는 먹물 위에 점묘화로 피어나는 영락이며 옷자락 꽃구름 자욱이 거느려 홀연한 나부낌이네 살과 뼈 다 녹인 천년을 .. 시조 2012.09.11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 이정환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 이정환 한밤중 한 시간에 한두 번쯤은 족히 찢어질 듯 가구가 운다, 나무가 문득 운다 그 골짝 찬바람 소리 그리운 것이다 곧게 뿌리내려 물 길어 올리던 날의 무성한 잎들과 쉼 없이 우짖던 새 떼 밤마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 시조 2012.05.09
나의 아라키스트여 / 박시교 나의 아나키스트여 / 박시교 누가 또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가보다 들녘에 옷깃 여밀 바람 솔기 풀어놓고 연습이 필요했던 삶도 모두 놓아 버리고 내 수의壽衣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 빈손이 허전하면 거기 깊이 찔러 넣고 조금은 거드름피우며 느릿느릿 가리라 일회용 아닌 여정이 .. 시조 2012.05.03
큰일 / 이종문 큰 일 이종문 시인 두보 영감 큰일이 날 뻔했다 강변 꽃소식을 알릴 데가 전혀 없어, 아 글쎄, 이 영감쟁이 미칠 뻔한 것이다 시인 아무개도 큰일이 날 뻔했다 천지간 타는 노을 그 환장할 불티들을 알릴 데 아무 데도 없어 미칠 뻔한 것이다 우리 과 한 처녀도 미칠 뻔한 모양이다 벚꽃이 .. 시조 2012.04.03
칸나/ 서정택 칸나 / 서정택 빨리 뜨겁지 말고 차츰차츰 뜨거워져요 단번에 불 확, 당기면 죄 타버려 재 될까봐 천천히 뻗은 두 손이 발뒤꿈치 듭니다 그래 그래요 천천히 이어 다시 천천히 아주 먼 길 돌아와 눈망울 온통 지지는 해오름 느긋한처럼 반 박자씩 천천히 내 꽃대가 꽃봉오릴 움켜쥐.. 시조 2012.01.20
자수(自手) . 이종문 자수(自手) / 이종문 달팽이 한 마리가 뿔 위에다 눈을 달고 폐기장 우뚝 솟은 철근 끝에 기어올라 우주를 다 둘러봐도 .... 아아 이제 땅끝. 시조 2011.10.08
벚꽃 한 줌 / 이원식 벚꽃 한 줌 / 이원식 따스한 봄날 공원 개와 개가 마주쳤다 짧은 정적 사이로 쏟아지는 하얀 환생幻生 서로는 눈가에 맺힌 요람 속에 나부꼈다 데칼코마니 살얼음 물길 따라 먹이를 찾는 새끼 물오리 저만치 어미 물오리 눈시울이 붉어있다 산책길, 길 멈춘 모녀 두 숨소리 젖어있다 시조 2011.10.05
맹인 / 이우걸 맹인 / 이우걸 맹인은 사물을 손으로 읽는다 손은 그가 지닌 세계의 창이다 마음이 길을 잃으면 쓸쓸한 오독도 있는... 눈 뜬 우리는 또 얼마나 맹인인가 보고도 만지고도 읽지 못한 세상을 오늘은 뜬구름인양 하염없이 바라본다 시조 201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