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숲 / 주선화 숲에서 보았다 파닥이며 펄떡이는 숭어떼들을 물살을 차고 오르는 저 붉은 숭어떼 부서지는 물비늘 하얗게 업고서 수음을 하는 그가 황홀해하는 모습으로 가장 빛나던 순간 찔려버린 눈 마지막 빛을 기억하는 숭어떼들의 몸부림들 숲에서 보았다 숭어떼들의 눈들을 사라질 검은 빛들을 *2.. 발표작품 2009.05.15
미모사 미모사 / 주선화 만지면 오그라든다 저녁 숲속으로 날아드는 작은 새 같다 통통 튕겨지던 스무 살의 처녀가 언제였던가 오그라드는 몸에서 초경치는 처녀의 비릿한 내음이 난다 어설픈 간지럼의 젖망울에서 탱탱한 젖살이 만져진다 바실리스크* 같은 사내의 밤꽃향이 울컥, 스쳐간다 더 깊이 오그라.. 발표작품 2009.01.13
여름 여름 / 주선화 쩍쩍 갈라진 명지 저수지에 물이 차오른다 늙은 어머니의 자궁 치마 걷고 누워 땡볕 쪼인다 촉촉이 물기 머금은 몸뚱이가 화르르 일어선다 쏟아지는 땡볕에 달궈지는 바윗돌 나무 등걸 올라타고 끝없이 오르는 담쟁이 긴 혓바닥 홧홧 대며 걸어가는 늙은 개 한 마리 * 시와 창작 겨울호 발표작품 2009.01.13
타이탄 아룸 타이탄 아룸* / 주선화 나이 마흔이 되어 꽃을 피웠다 그대가 내게 준 마흔 송이 붉은 장미가 아닌 홀로서기로 우뚝 피워낸 꽃 세상에서 가장 큰 꽃 사흘이면 사라질 꽃 죽음을 기다리며 피는 꽃 오래된 주검에서 썩은 악취가 난다 벌레를 불러들인다 염(殮)보다는 코를 틀어막고 서성이는 것으로 만족.. 발표작품 2008.10.07
풍화리 5 풍화리 5 /주선화 풍화리 달아공원 6km 바다를 돌고 돌아 산 위에 오르니 만개한 달이 두둥실 솟아 오른 듯한 달아공원 앞으로 옆으로 섬 섬 섬 섬으로 이어진 공원에 서서 섬에 갇힌다 섬은 날개를 펴 나를 옥죄인다 너도 여기 와서 섬이 되라고 바다 속을 날개 퍼덕이며 함께 날아가자고 2008 마산 문학 발표작품 2008.10.07
먼지버섯 먼지버섯 그녀 숲속으로 조신조신 들어갔네 암울했던 세월 거두어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벙어리 십여 년 청산하고 초원 속 한 줌 먼지로 남을지언정 풀뿌리 캐어먹고 새소리 들으며 두더지와 얘기하며 밤 새워도 좋아 그녀 물속으로 자박자박 들어갔네 마음의 때 벗기고 벗겨 .. 발표작품 2008.10.06
계단 / 주선화 계단 / 주선화 후미진 시장 뒷골목 어머니 굴을 잡는다 두드려도 때려도 벌리지 않은 입을 쩌억 벌리게 하는 힘은 굽은 등과 한쪽 다리를 접고 앉은 팔의 힘이다 쉬가 마려운 어머니 일어나신다 걸어가시는 모습이 ㄱ자시다. 낫 놓고 ㄱ, 모른다 하신다 낫은 알제, ㄱ은 뭐하당가? 칠남매 키운 힘은 저 .. 발표작품 2008.02.14
후보자들을 아이들을 좋아한다 / 주선화 후보자들을 아이들을 좋아한다 / 주선화 할아버지는 내 것을 만지기 좋아해요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고 킁킁 냄새 맡기를 좋아해요 나에게 달콤한 향기가 난다나요 이뻐 죽겠다고 자꾸 뽀뽀를 해요 할아버지의 거친 수염이 빰에 아랫도리에 벌건 자국을 남겨요 푸푸푸 불어요 푸루루푸루루 비 .. 발표작품 2008.02.13
씨발 / 주선화 씨발 / 주선화 하루종일 귀가 가렵다 집에 들어가는데 코앞에서 문이 닫혀서 씨발, 문틈에 옷이 끼어서 씨발, 이마위에 버려진 말 무심결에 던져진 말 시발택시를 모는 삼촌이 시발택시에 치어 죽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이 씨발, 참 정겨운 말이다 가렵지도 않은데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더렵지도 않은.. 발표작품 2008.02.13
스파이더맨 / 주선화 스파이더맨 * / 주선화 초등학교 3학년 철이와 5행시 짓기 놀이를 한다 아들이 운을 띄우고 아빠가 시를 지엇다 제목 " 스파이더맨 " 스 : 스파게티를 먹고 학습한다 파 : 파리를 쫓아매며 학습한다 이 : 이를 닦고 학습한다 더 : 더워도 학습한다 맨 : 맨날 맨날 학습한다 이를 듣고 잇던 아들녀석 한숨을 .. 발표작품 2008.01.24